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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칼럼 6월] 가족이나 지인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 좋을까?

가족이나 지인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 좋을까?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촉탁임상조교수 전명욱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실에서 혹은 병실에서 환자, 보호자들께 가족처럼 생각하고 돌봐 달라는 부탁을 종종 듣습니다. 우리 아이를 조카처럼 생각하고 돌보아 달라, 우리 부모를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살펴봐 달라는 말씀입니다. 보통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세심하게 정성껏 봐 달라,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는 뜻인데, 굳이 따로 말씀하실 필요는 없는 내용이어서, 제가 출근하면 하루종일 하는 일이 그런 거라 굳이 따로 부탁하실 필요 없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어떨 때는 '선생님 가족이라도 이렇게 하시겠어요?' 혹은 '선생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이럴 때 대답은 '제 가족이 아프면 저는 담당 의사선생님 말씀대로 할 겁니다' 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담겨있는 속뜻이 나나 내 가족을 부당하고 무리하게 특별대우해 달라, 혹은 무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주거나 권고를 따르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말라는 뜻일 경우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원칙대로 진료하지  말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골라서 들려 달라는 뜻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저는 좀더 냉정해집니다. 저한테 찾아오는 다른 환자한테까지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도 있지만, 그건 둘째치고도 치료도 산으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료실 안에서 친절하려고 노력하지만, 저희 부모님한테 친절하지도 공손하지도 못하고 답답하게 하면 화도 버럭버럭 내는데 그렇게 해달라는 말씀이신가요?' 라고 반문한 적도 있었고, 아이를 조카처럼 생각하고 봐달라고 할 때는 '만일 누님이나 형님이 제 조카를 이런 식으로 놔두고 계셨으면 제가 가만 있지 않았을 겁니다' 라고 말씀드렸던 적도 있습니다. 

 

  진료를 받으면서 가족을 언급하시는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모르고 낯선 상황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가능하면 특별대우를 받고 싶은 심정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은 하소연하고 싶으면서도, 어떤 일들은 부끄럽거나 두려워서 자세히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껄끄럽고 불편하고, 내가 편안하고 익숙한 사람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친척, 친구, 동창, 거래처 직원,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소개를 받아서 진료를 받고 싶어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물며 가족,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 중에 의사가 있다면 우선 궁금한 걸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가까운 사람이 의사라고 하더라도, 진료과를 불문하고 직접 진료받는 것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습니다. 가벼운 문제라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생사가 오갈 수 있거나 중대한 경우일수록 직접 진료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다른 과 진료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더욱 그렇습니다.

 

  가족이나 지인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여서 직접 상담하거나 처방을 받는 것에  장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서로 아는 사이에서는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편하고 빠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이나 지인이라고 해서 신뢰할 수 있고, 무성의하게 혹은 엉터리로 진료할 확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나 지인이 아니라면 무성의하게 엉터리로 진료하는 정도의 인성과 책임감을 가진 의사라면, 자기 식구나 친구라고 해서 제대로 진료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가까운 사이에서 직접 진료를 하게 될 경우, 민감한 문제일수록 기존 관계에서의 선입견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 문제를 실제와 달리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증상이 심각한 상태인데도, 사적으로 알고 있는 모습 때문에 실제보다 상황을 가볍게 판단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이다 보니 걱정하는 심정에 실제 상황보다 상태를 심각하게 판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가까운 사이일수록 비밀보장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일단 의사-환자로서의 관계 이외에 기존의 관계가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속마음이나 증상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데 부담감을 가질 수 있고, 이는 의사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자신의 인사업무에 직접 관여할 수도 있는 관계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다면 아무리 신뢰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마음 편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증상을 숨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의사 입장에서도 병원이나 환자에게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증상이 있다면 환자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학교 선생님이 자기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의 자녀의 담임을 맡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아무리 의사라도 자기 반 학부형에게 증상을 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증상과 질병을 다 알고 있는 의사의 자녀에게 담임선생님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요?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가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다른 진료에도 해당되는 점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가까운 사이에서는 의사의 판단 및 권고에 적절한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의사가 자신의 가까운 친척 어르신을 진료할 경우, 의사의 권고를 가볍거나 편하게 생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친한 친구 관계에서 진료를 받게 되면, 까다롭거나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나 조심해야 할 사항에 예외를 요구하거나 하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서 지켜야 할 생활수칙 같은 것이 있을 경우, 자신을 진료한 의사를 사적으로 알고 있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도 지키지 않는 것을 나한테 지키라고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치료에는 방해물로 작용하게 됩니다. 사생활을 알 정도의  사이가 아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로 치료가 방해받는 것이지요.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리고 문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저나 다른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직접 진료하기보다 추천할 만한 다른 의사를 찾을 때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이에서 거절하는 것, 그것도 공짜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와서 예약해서 접수하고 진료비 내고 보겠다는 걸 거절하는 것이 물론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물론 건너건너 아는 분이 소개로 찾아오셨을 때 진료하는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혹은 특정한 문제를 맡을 만한 다른 의사가 없는 경우 등의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 아는 의사가 혹은 소개받은 의사가 나를 직접 보려고 하지 않고 다른 의사를 소개할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치료를 위해 더 나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진료하는 의사가내 가족이나 친척, 친구이거나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소개받은 의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도 치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의사 입장에서 부담을 느껴서 진료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 있고, 아니면 아예 다른 의사를 추천받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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