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과도하게 치료하고 싶은 욕심을 경계하면서 ‘내 부모님이라면?’ 자문해 봐요. 치료 효과보다 환자의 안전성을 우선으로 하며 적정선을 찾습니다.” 심혈관 질환은 망설임 없이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 김태오 교수가 주로 치료하는 다리 혈관은 30~60cm로 비교적 치료 범위가 길어 방사선 노출량이 많고 체력 또한 요구된다. 시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때를 대비한 플랜 B도 철저해야 한다. “사실 항상 두려워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부담을 이겨내는 게 성장이겠죠.”
내가 찾은 일의 가치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가 김 교수의 미래를 결정지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사가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고 사람을 살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뜨거워진 것이다. 의대에 진학한 뒤 심장내과 실습 중에 시술받던 환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상황을 보게 되었다.
“시술을 시작하고 환자의 심전도가 평평한 직선을 그리기까지 채 40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충격이 컸지만 동시에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를 살리는 일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졌죠.”
그러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성격 때문에 매달 과를 바꿔가며 수련받던 인턴 시기에는 애를 먹기도 했다.
“적응에 시간이 걸릴 뿐이지 적응 후에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며 저 자신을 다독였어요. 약점을 극복하고자 열심히 변화를 체득하며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죠. 당시 제가 만든 인계 노트의 흔적이 아직까지 공유되고 있더라고요(웃음).”
펠로우 때 다리에 동맥 폐쇄증이 생긴 환자들이 종종 찾아왔다. 환자가 드문 만큼 명확한 치료 시스템이 서 있지 않았다. 즉시 치료해 줄 전문 의사를 만나지 못하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었다.
“다리 혈관을 살리는 치료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렸어요. 굳이 한 달에 한두 명을 치료하려고 배울 필요가 있냐는 거죠. 제 생각은 달랐어요. 많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하는 장소와 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잖아요.”
배움은 기회로 이어졌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에서 다리 혈관과 말초혈관 중재 시술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질병이 아닌 환자를 보는 치료
복부 내 혈전이 다리 양쪽으로 가서 급성 하지 허혈이 발생한 환자를 만났을 때다. 하지 허혈을 치료할 때 생기는 위장관 출혈의 위험과 치료를 안 했을 때 생기는 하지 절단의 위험 사이에서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다.
“치료를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환자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환자와 상세한 면담 끝에 한 발은 통증을 줄이는 급진적인 치료를 하고 한 발은 보존 치료를 하기로 했죠.”
하지 혈관조영술로 혈관이 차단된 정도를 확인하며 약물 치료를 진행한 끝에 한 발은 발가락을, 한 발은 발목 아래를 절단했다. 원래 무릎 위로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들었던 환자는 자기 힘으로 걸을 수 있는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혈관 자체가 아닌 환자를 보며 치료하려고 했어요. 휠체어 대신 지팡이를 짚고 외래에 오는 환자를 보면서 혈관 치료만이 제 목표가 아니라는 걸 알았죠.”
김 교수는 시술 영상이나 전후의 차이를 환자에게 자세히 보여준다. 왜 이런 치료를 결정했는지 설명하면 환자들은 추후 치료 과정도 순조롭게 수긍한다. 시술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분야이기에 김 교수는 환자의 신뢰를 기반으로 환자와 함께 늙어가는 의사를 꿈꾼다.
“87세의 환자가 대뜸 ‘나는 더 살고 싶어서 치료한다’라고 하셨어요. 고령의 합병증 환자들은 대개 적극적인 치료를 꺼리는데 솔직한 마음을 듣고 나니 더 도와드리고 싶더라고요. 환자와 함께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어요.”
협력으로 이루는 최선
어느 주말, 하지 허혈로 상처가 낫지 않는 환자가 울산에서 찾아왔다. 성형수술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당뇨발팀은 치료 일정을 서둘러 잡았다. 이틀 만에 혈관외과에서 우회술을 집도하고 김 교수는 다리 밑 혈관의 재관류 시술을 진행했다.
“각 과가 순차적으로 재빨리 치료하는 과정에서 협력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혈관외과에서 수술하면 침습적이고 완벽하지만 치료 범위가 한정돼요. 심장내과의 혈관조영술이나 중재 시술로 보강해야 하죠. 상호보완적인 협력을 끌어낼 치료 과정을 적극적으로 연구해 다리를 살리는 치료의 선택지를 늘려가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의 모든 구성원에게서 수준 높은 전문성과 책임감을 엿본다.
“환자 한 명도 허투루 보는 법이 없는 건 모두가 ‘내 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유명한 의사도 좋지만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제 능력을 키워가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진일보한 연구와 치료를 제공하면서요.”